신성일은 지난 2018년 11월 4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17년 6월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후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
전날인 11월 3일부터 병세가 위독해져 그간 치료를 받아오던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전남대병원으로 이송, 아들 강석현 등 가족들이 고인의 곁을 지켰지만 오전 2시 25분께 끝내 사망했습니다. 향년 81세입니다.
신성일은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나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후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영화를 줄줄이 히트시키며 60~70년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미남 스타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신성일이 지난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이후 배우로 출연한 영화는 총 524편이다. 배우 엄앵란과 결혼해 당대 최고의 남녀 스타의 결혼식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답니다.
2000년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2001년에는 한나라당 총재특보를 지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영화와 관련된 일에 앞장섰던 고인은 2002년 춘사 나운규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 2005년 뇌물 수수 혐의로 2년 간 구속 수감된 이후로는 영천에서 지냈답니다.
최근 엄앵란은 한 방송에 출연해 남편 신성일을 향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신성일이 폐암 말기로 투병할 당시를 떠올리며 "(신성일이) 집에서 아픈 티를 안 내고 병원에 갔다. 전라도 먼 병원에 간다고 하더라. 공기도 좋고. (신성일이) '방 하나 해줄게'라고 했지만 나는 '아 때가 됐구나'라고 느꼈다"라며 "따뜻한 수건으로 (신성일의) 발을 씻겨줬다. 오른발도 씻겨주려니 싫다고 하더라. 자기도 양심이 있었던 거다"라고 전했다.
또 엄앵란은 신성일이 감옥에 갔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내가 신성일의) 면회를 하고 나오는데 간수가 '신성일 씨가 주신 거예요'라며 꽃을 한 송이 주더라. 그게 우리 남편이 미안하다는 소리야. 내가 장미를 한 번 보고 하늘 한 번 보고 펑펑 울었다"고 전했습니다.
방송서 엄앵란은 현미가 "지금도 그 꽃 갖고 있냐"고 묻자 엄앵란은 "갖고있지"라고 답하면서 남편을 향한 애틋함을 더했답니다.
엄앵란, 지팡이 짚은 충격 근황 "관절 수술 후 4년 칩거생활"(마이웨이) - 2022. 10. 9
10월 9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는 가수 현미가 출연했답니다.
현미는 절친 배우 엄앵란을 만났다. 2015년 유방암 투병과 관절수술을 겪은 엄앵란은 지팡이를 짚고 현미에게 의지해 어렵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 살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고. 현미는 "우리 그 아파트에 살았었을 때 1975년에 1300만원 주고 샀는데 지금은 50억이다. 정말 비정상이다"라고 혀를 내두르며 후회했답니다.
남편을 각자 떠나보낸 두 사람은 식사를 하다가도 고인이 된 남편을 떠올렸다. 엄앵란은 "우리 남편들 살아있을 때 이렇게 차려주면 얼마나 좋아했겠니. 그거 보면 안 됐다. 남편들 다 빼놓고 둘이 오붓하게 먹는 게 좀"이라고 생각에 잠겼다. 반면 현미는 "남편들 이미 갔는데 뭐. 남편들 있으면 남편 챙기느라 이렇게 못 먹는다. 나나 엄앵란은 열녀였다. 우리 바보 같이 살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답니다.
촬영을 하던 도중 넘어져 무릎 수술을 했다는 엄앵란은 "4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 절뚝거리면서 나가면 창피하잖아요. 현미 씨하고 같은 동네에 사는데도 창피해서 이 집을 안 갔다"고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미는 "아무리 친해도 자존심이 있지 않냐. 얼음판에 넘어진 충격이 너무 큰 거다. 나이는 나이다. 아무리 젊게 살아도. 내가 가끔 그런다 '아이고 하나님 나이는 나이입니다' 내 생각에는 젊게 행동하지만 그렇게 안 된다. 나도 현관에서 넘어져서 허리가 휘었다"고 공감했답니다.